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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특집 읽고나서

irinote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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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사입니다.  우선 의사라고 백안시하지 말아주시고요, 모든 집단이 다 그렇듯 (아마 정치인들만 제외하면) 그 집단의 성격으로 보아 짐작가는 캐릭터와는 전혀 반대인 사람이 소수나마 있을 수도 있거든요.

1월호 의료민영화에 대한 특집을 읽고서, 그냥 한자 적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지엽적일 수도 있겠지만요. 논지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저 또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적극 반대하는 입장인데요.

제가 그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좀 아팠던 것은, 배 아픈 환자 진료보는 이야기가 나온 대목에서 말입니다..

의사가 특별하지 않은 증상으로 온 환자에게 이것 저것 자꾸 검사를 권하는게 옳으냐 아니냐는 이제 아주 고전적인 논쟁거리가 되었을 정도로 많이 회자되었죠. 따라서 제 글도 새롭지도 참신하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한마디만 적고 싶네요.

실제 강연에 자리하지 않아서 어떤 어조로 그 이야기를 하셨는지 편집하면서 문자화되는 과정에서 앞뒤 전후 문맥이 잘려나가서 그렇게 받아들여진건지는 모르겠는데, 배가 아프면 대부분 일반 엑스레이만 찍으면 되는데, 초음파 CT MRI까지 강권하는 분위기로 몰고가는 의사가 돈에 눈먼 족속처럼 그려져 있네요.

늘 모든 문제에는 드러난 꼬리보단 감추어져 있는 몸통이 문제라는게 뒤늦게 지적되곤 하듯 이것도 마찬가지로, 의사 개개인의 자질문제라기 보다는 '현실 상황'이 그런 검사를 권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제가 하고픈 말입니다.

물론 좀 더 돈을 벌기 위해 쓸데없는 검사를 권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없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 사람이 "흔할까요?" 복통으로 왔다가 초음파 검사 없이 CT 찍을 장비가 있는데 안찍고 단순 장염이군요, 하고 보냈는데 알고보니 담관염이나 담낭염이라든가, 젊은 여성분들 같은 경우 자궁외 임신이나 난소낭종 출혈이라던가.. 뭐 예를 들라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만..  이 모든 증상이 겉으로 드러난 바로만 얘기하자면 그저 며칠전부터 배 아프고 토하는 것.. 열도 있을 수도 있고 뭐 없을 때도 있구요.

그러면 애초에 실력을 쌓아서 그런 검사 없이도 진단할 수 있도록 먼저 자기 실력을 쌓는게 먼저이지 않겠느냐 검사에 의존해서 진료하려는 의사의 마인드가 글러먹었다 하는 생각을 가지는 분들도 있겠죠? 의사도 사람입니다. 점쟁이나 관상으로 판단하는게 아니라, 손과 귀와 눈과 청진기와 일반 엑스레이로는 판단하지 못하는 소견이 분명 있습니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검사를 하느냐는, 의사의 개인적 취향(?)이나 재량에 의해 결정된다기 보다는 교과서나 각종 학술지에서 언급되는 (이른바 가이드라인이라고 하는) 원칙에 의거합니다. 물론 이것은 대원칙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 원칙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환자 개개인마다 적용이 다 달라지지만, 아무때고 꼴리는대로 이것 저것 검사를 남발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죠.

이 가이드라인이나 교과서에서 나온 공인된 내용을 바탕으로, 특정 상황 하에서 특정 증상을 호소할 경우에는 누구라도 (아무리 하버드나 존스홉킨스의 대가라도) 맨손 진찰이나 엑스레이만으로 판단못하니 더 자세한 검사로 확진할 필요가 있다고 전세계의 의사들이 모여서 만든 원칙이 있기에 의사들이 고가의 검사를 청하는 경우의 정당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겁니다. 정말이지, 아무나 대놓구 돈 좀 있어보이니 복부 CT 함 내볼까, .. 아  진짜 이렇게 하는 의사는 정말 없습니다. ㅠㅠ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시행할 법한 개연성이 있는 (비교적 고가의) 검사를, 환자가 나더러 돈밝히는 의사라고 욕할까봐 두려워서 권하지 않았다가 불행히 오진으로 판명되어 그로 인해 환자의 건강이 심하게 손상될 경우 의사는 고소를 당할 수 있고 차라리 검사를 권했다가 환자가 거부해서 안했을 경우라면 책임이 면제될거라는 생각에 일단은 조금이라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권하는 것이 당연한 심리입니다.

복통을 예시로 든 것,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석균 선생님 자신이 의사라면 하필 다른 그럴듯한 예도 많은데 왜 제일 복잡한 변수가 많은 복통을 예로 들었을까요. 그건 무리지 싶다, 하는 생각이 당연히 의사라면 들었을텐데..

논조가 정당하고 내용이 옳아도 사소한 예시 하나에서 신뢰를 잃어버리면 공감도가 확 낮아져버리잖아요.

본문에 복통으로 비유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가령, 환자는 기침을 한다는데 난데없이 복부 CT를 찍어보잔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겠지요, 하지만 복통이 있는데 대부분 일반 엑스레이만 찍어도 되는 것을 초음파 CT까지 권한다, 이렇게 단 한문장안에 그 복잡다단하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포함하는 복통의 진단을 뭉뚱그려 도매급으로 표현한다면, 아, 정말 전세계의 (한국 뿐 아니라) 어떤 의사도 찬성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잘 모르는 비의료인은, 이 글을 읽고나서는 아, 그렇구나, 역시 의사들은 도둑놈이네.. 돈 잘버는 것들이 더 돈에 혈안이 되있단 말이야.. 하고 평소의 가져오던 생각에 더욱 강한 확신을 느끼겠죠.

그러고나서 만일 그 사람이 며칠 후에 맹장염에라도 걸릴 운명이라고 칩시다.  먼저 개인병원을 가겠죠. 배를 눌러보더니 음.. 맹장염 같은데요, CT나 초음파를 찍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지극히 정당한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은 생각할 겁니다. 아 역시 이놈의 의사봐라.. 그냥 엑스레이도 있는데 더 비싼 검사를 괜히 권하는구나 싶어 그 사람은 뭔가 똑똑하게 알고 처신한다고 스스로 뿌듯해 하며 말하게 될겁니다.

이 검사 안할겁니다. 이 병원 참 이상하네 한 하루이틀 배 좀 아팠다고 금새 초음파 검사 때려버리네 쳇 이 병원 다신 안가. 그러면 검사를 꼭 해야한다고 권하는 의사나, 결국 제때 진단시기를 놓친 환자나, 힘들어지는건 마찬가지겠죠.

 

정리하면,

 

비싼 검사를 불필요하게 권하는 의사 개개인의 자질은,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아무려면 어떤 의사가 돈 때문에 함부로 그럴까요. 없다고 단정짓기엔 무리지만 그게 의사사회에서 대세는 분명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방어진료를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의사에게 (물론 환자도 어려워지지만) 고소하여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상황,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런 검사 하나하나가 환자의 호주머니에서 자비로 부담케 하는 나라의 정책이 문제인 겁니다.

검사가 무료라면, 의사가 좀더 자기 진단을 정확하게 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 방책으로 또다른 검사를 하는 것에 환자가 대체 뭐하러 반대하겠습니까. 자기 몸에 대해서 저 자세히 이것저것 검사해준다는데 말이죠.

결국엔 제가 보기엔, 돈이 문제인 겁니다.

하지만 그 글에서는 돈 문제 얘기하다가 갑자기 그 복통의 예시에서는 의사의 자질이 수전노인양 말하는 듯 하여 조금의 반발이 느껴졌습니다.

장황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은책 말씀대로 의사 개인의 자질은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겠지요. 저희들도 좋은 의사들이 더 많다고 확신합니다. 늘 그렇듯 몇몇 사람들 때문에 좋은 사람들이 싸잡아 욕을 먹지요.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무상의료가 실시되면 그런 일도 없을 텐데요. 2011-01-24 11:33 댓글삭제
  • 작은책최규화 아 잘 와닿는 글이네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작은책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꼭 말씀해 주십시오^^ 2011-01-24 15:51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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