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독자 투고

오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1)

최성희

view : 2874

오빠가 완치될 수 없는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구충제 치료법 등 암치료에 대한 방법들을 찾아봤다. 동생들과 함께하는 단톡에 치료법 동영상을 보냈다.

언니, 제발 부탁인데 그냥 가만히 있어. 언니 때문에 머리가 더 아파. 일단 내가 엄마랑 왕솔이 데리고 천안에 가서 더 알아 볼 거야. 언니는 그냥 무조건 쉬어. 알았지?”

지금은 가만히 쉬는 시간. 동생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계속 휴대폰으로 암 관련 검색을 한다.

동생이 오빠를 만났지만, 의사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오빠 위 스텐트 시술을 보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워 천안에 남았다. 어머니와 동생은 새언니에게 일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오빠가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언니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빠도 말을 듣지 않고, 새언니라도 일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무엇보다 오빠는 지금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수술만 하면 끝날 일로 생각한다. 그러니 간호사가 나보고 오빠 본인이 암인 줄 알고 있냐고 물었다. “암인 줄은 알아요.”

오빠는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위쪽으로는 안 되고 복부로 힘들게 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로도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픈 아들에게 뭐든 먹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신부님을 병원에 불러 병자성사를 보게 하고 천안을 떠났다. 어머니는 천안에 계속 남아 오빠를 돌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오빠도 새언니도 나도 누구도 지금 어머니의 돌봄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벽 양양 버스터미널에서 울던 그때를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든 오빠를 위해 최선을 다 할 거니, 어머니는 어머니 몸만 챙기시라고.

나는 천안에 있는 암 전문요양병원을 알아봤다. 1주일 최소 100만원. 코로나19로 면회가 금지. 1인실로 입원을 할 경우 가족 중 1인이 같이 생활 할 수 있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원도 알아봤다. 호스피스는 월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저렴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국가 호스피스병실은 사라졌다. 천안의료원도 호스피스 병실이 있었는데, 가정방문 호스피스만 한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유명한 강릉 갈바리병원에도 전화를 했다. 여기는 무조건 가족 1인이 동반해서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요양병원이든 호스피스든 담당자 모두가 나보고 오빠에게 정확하게 말기암이란 걸 알려주고, 본인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긴급의료비 지원에 대해 더 알아봤다. 본인이 아니라 전화로 상담이 어려웠다. 동생에게 아버지와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지고, 오빠가 받을 수 있는 긴급의료비지원 대해 정확하게 건보 상담을 받도록 했다. 오빠 경우 퇴원 시 첫 치료비가 35십 만 원 이상이 나오면 지원 대상이라고 한다. 년 간 최대 2천 만 원이다. 보험과 지자체의 다른 지원을 받으면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했다. 나는 오빠와 새언니가 일을 그만두고, 기초생활수급신청을 하고 의료비 지원받게 하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외삼촌과 많은 지인들이 오빠를 서울대 병원이나 서울삼성병원에 옮겨,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지금 오빠를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질 일은 아니고, 무엇보다 지금 천안에서 가족과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 얼굴을 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단국대병원에 오래 있는 것으로 둘은 합의를 봤다.

스텐트 시술이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오빠에게 항암치료를 권했다. 오빠는 항암이든 수술이든 뭐든 다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오빠에게 위암 4, 대장암 3, 말기암 환자라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성희야, 나도 암인 걸 알아. 그래도 희망을 놓으면 안 된다고 했어. 나는 수술 받고 항암치료 받을 거야. 절대 죽는다는 생각은 안 할 거야.” 이렇게 말하는 오빠에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오빠만이 아니라 우리가족 누구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기적을 꿈꿨다.

하지만 나라면, 나는 지금 이 병원에 있지 않을 것이다.

제주에 있는데, 간호사가 계속 나에게 언제 병원을 방문할 수 있는 지 물었다. 나는 오빠가 원하는 대로 치료를 받기 원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의사가 꼭 나를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의사와 전화로도 다 이야기를 나눴데, 항암 담당 의사는 전화로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꼭 만나서 설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았지? 항암을 받고 나서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일단 보호자를 부르는 거라는 걸. 보호자와 환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걸 내가 모르는 줄 알아.’

가능한 빨리 항암이 들어가야 한다고 나보고 빨리 병원에 오라고 했다. 나는 현 상황에서 오빠의 항암을 반대하는 입장이라, 내가 나서서 항암을 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태풍 핑계를 대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8월 말에 항암을 시작한다고 했다.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 일단 오빠가 원하니까. 오빠 인생이고 오빠 삶이니까.

오빠와 새언니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항암치료를 반대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