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법보다 무서운 오야지

월간 작은책

view : 2002

살아가는 이야기

노가다꾼으로 살아가기

 

법보다 무서운 오야지  

 

송주홍/ 글 쓰는 노가다꾼, 《노가다 칸타빌레》 저자 


 입사 면접 볼 때나 직장 상사에게 아부할 때 가끔 이런 표현을 쓴다. “회사를 위해 목숨 걸고 일하겠습니다.” 이 말이 노가다꾼들에겐 단순한 결의나 충성의 표현이 아니다. 우린 진짜로 목숨 걸고 일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무슨 놈의 목숨까지 걸어 가며 일하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이다. 우리도 목숨까지 걸고 싶진 않다.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목숨 걸고 일하게 만든단 말이다.

 

 한두 번은 들어 봤을 거다. 건설산업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관해서 말이다. 이게 문제다. 건설 현장 안전사고는 모두 여기서 출발한다.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 하도급 구조 먼저 설명해야겠다.

 

 예를 들어 LH(=발주처)에서 공공 임대아파트 10개 동을 짓는다 치자. 대형 건설사(=원청)에 도급을 준다. 원청은 다시 중소 건설사(=하청)에 하도급을 준다. 하청은 또다시 형틀, 철근, 타설, 비계 등 공정별 ‘오야지’에게 재하도급을 준다.  
 

 오야지? 오, 야, 지, 이??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나라 건설 현장엔 여전히 오야지가 존재한다.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오야지가 말이다. 참고로, 건설산업기본법 제3장 도급계약 및 하도급계약 제29조(건설공사의 하도급 제한) 등을 보면 하 청 건설사와 오야지 간의 이면계약, 이에 따른 재하도급 모 두 불법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우리나라 건설 산업 하청 구조를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라고 부르는 거다.  

 

 이게 선진국을 자처하는 21세기 대한민국 현실이다. 유럽처럼 원청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하청에서, 하다못해 계약직으로라도 채용해 주면 더러운 꼴 좀 덜 보면서 일할 텐데, 원청이고 하청이고 모르쇠로 일관 한다. 일하고 싶으면 오야지 통해서 오라는 거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보니, 망치질해서 먹고살려면 오야지 밑에서 일하 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일용직으로. 실제로 우리나라 노가 다꾼 대부분이 오야지 밑에서 일한다.

 

 물론, 오야지와 함께 새로운 현장 들어갈 때마다 하청 건설사와 형식적인 근로계약서를 쓰긴 한다. 더 깊게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이렇게만 얘기하련다. 우리에게 그 근로 계약서는 종이 쪼가리다. 월급통장에, 얼굴도 모르고 본 적 도 없는 하청 건설사 대표 이름이 찍히긴 하지만, 그게 전부 다. 인사권을 비롯한 모든 권한이 오야지에게 있다. 

 

 자 그러면, 법적 근거도 없는 오야지와 하청 건설사는 어떤 방식으로 계약할까. 이 계약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 이걸 알아야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안전사고를 연결해서 볼 수 있으니까. 

 

 오야지는 통상 ‘제곱미터당 얼마씩’ 받는 걸로 하청 건설사와 계약한다. 편의상 ‘평당 100원’ 받기로 했다고 쳐 보자. 오야지가 인부를 부려 20평짜리 4세대가 한 층으로 이뤄진 20층 아파트 2개 동을 지었다. 그럼 하청 건설사는 오야지에게 32만 원(100원×20평×4세대×20층×2개 동)을 준다. 오야지는 이 돈으로 인부들 일당 주고, 간식이랑 밥 사 먹이고, 경우에 따라 숙소도 제공해 주고, 남은 돈을 가져간다. 오야지가 인부들을 들들 볶는 이유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 빨리 건물을 지어야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  

▲ 건설현장 노동자들 ⓒ작은책

 

 그럼 오야지 밑에서 일하는 노가다꾼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나는 일용직이다. 당장 오늘이라도 오야지 눈 밖에 나면 쫓겨날 수 있는 처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야! 이 새끼야,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오야지 말 한마디로 쫓겨난 사람, 셀 수 없이 많이 봐 왔다.  

 물론, 위에서도 얘기했듯 우리는 법적으로 하청 건설사 소속 계약직 노동자다. 죽자고 덤비면 부당해고니 뭐니 따져 가면서 하청 건설사와 싸워 볼 순 있다. 어떤 용감한 노가다꾼이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아직 그런 사람 못 봤다.
   

 상대적으로 법과 행정에 어두운 노가다꾼이, 당장 오늘 일 해야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일용직 노가다꾼이, 생계 다 팽개치고, 오늘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 가 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더군다나 지역 카르텔 굳건한 하 청 건설사를 상대로 싸운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또 얘기하지만, 구조적으로 그렇다. 그게 오야지 밑에서 일하는 노가다꾼 입장이다.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고, 오야지는 눈에 불을 켜고 우리만 보고 있다. 일 못 하는 놈 망치질 느린 놈, 당장 오늘이라도 쫓아내겠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작은책

 

 우리라고 왜 무거운 자재 두 개씩, 네 개씩 들고 다니고 싶을까.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작업 상황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서두르면 다친다는 거, 왜 모르겠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눈 질끈 감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거 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안전관리자들이 호루라기 불면서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뛰지 마라.”, “하나씩 들어라.”, “안전하게 작업해라.” 백날 잔소리해 봐야 의미 없다는 거다. 노가다꾼들에게 중대 재해처벌법이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 에게 법보다도, 안전관리자보다도 더 무서운 건 우리가 일용직이라는 사실. 그런 우리의 인사권을 오야지가 갖고 있다는 점이니까. 큰 현장에서는 아침마다 원청 주관으로 안전 조회라는 걸 한다. 다 같이 체조도 하고, 공정별 위험 포인트도 설명해 준다. 조회 말미에는 꼭 안전 구호 삼창을 외친다. 원청 안전관리자가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 안전 구호는 ‘추락 주의 좋아’로 하겠습니다. 구호 준비!” 

 

 “얍!!!” 
 

 “추락 주의 좋아! 추락 주의 좋아! 추락 주의 좋아!!”

 

 이 안전 구호 삼창 때 자주 등장하는 구호가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이다. 그 구호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왜? 나도 내 안전을 내가 지키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가 모두 아는데, 마치 각자 의지만 있으면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듯, 허무맹랑한 안전 구호를 외치라고 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거다. 나는 마법사가 아닌데, 자꾸 주술을 외우라고 하면 도대체가 어쩌란 건지. 그래 이놈들아, 나도 내 안전만큼은 내가 지켰으면 좋겠다!!!!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사고로 아홉 분이 사망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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