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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후기

'서민에게 철학이 필요한 까닭'을 읽고

이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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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20일이 지나면 기다려지는 게 있다. <작은책>이다. 12월호가 어제(23일) 왔다.(세월을 가불하는 것 같아서 12월 전에 오는 게 좋지만은 않다.) 책을 받을 때마다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정해져 있다. '작은책 인문학 강좌 - 일하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이다. 철학자 강신주 선생의 강연을 글로 읽는다.

지난해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강연하는 것을 한 시간쯤 들은 일이 있다. 교사를 '인질범'이라고 했다. 강연하는 이의 기에 눌려서인지, 어느 정도 동의를 해서인지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그때 들었던 그 분위기로 글을 들었다. 어려운 대목도 있고, 시원하고 통쾌한 대목도 있고, 안타까운 대목도 있었다. 그럼면서 기억해야겠다는 내용도 많았다. 몇 구절을 옮겨 본다.

"조선시대보다 지금이 좋아졌다라고 보이지만은 않아요. ---- 조선시대를 보면 일하는 시간이 지금보다 현저히 적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물론 조선시대와 지금을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을 왜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돌이켜 보게 된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절절하지 않나요? 백장스님이 한 말입니다. 그런데 백장스님이 나이가 들잖아요. 그래서 제자들이 일하지 말라고 쟁기를 숨겼어요. 그랬더니 스님이 굶으신 거예요."

"노동을 부정하지 마세요. 일 안 하기로 작정한 새끼들이 펜대 굴리면서 정신노동은 위대하다는 신화를 만든 거예요. ---- 정신노동을 강요 강조하는 인간들은 일 안 하는 놈이에요."

"노동자가 시를 못 쓰게 하는 세상이 나쁜 세상이죠. 노동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시를 쓸 시간이 없는 거예요. 삶이 노동하는 시간과 사랑하는 시간으로 양분된다면 시를 쓰는 건 사랑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노동하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을 위해서 쓰이는 거예요."(정신이 번쩍 든다. 노동이 아니라 사랑이구나! 그리고 시!)

"작은 것 하나하나가 전체를 반영합니다. 예를 들면 이 물 한 병이 우리 전체 자본주의의 체계를 다 상징하는 거예요. 물이 오염됐다는 것에서부터, 그래서 우리는 이걸 사 먹는다는 것, 이 공장에서 이걸 만들려면 공장이 돌아가니 물이 또 오염될 것이라는 것, 결국 우리가 생수를 계속 먹으면 물은 계속 오염될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에 이르게 되죠. 이 하나가 우리 사회를 다 얘기하는 거예요."

"모든 앎의 바닥에는 사랑이 있어요. 이게 철학이에요. 인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에정,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지혜, 앎, 성찰. 어쨌든 필로소피가 뭔지 아시겠죠?"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우리의 존엄을 지켜야 되잖아요. 존엄은 내가 상품이 안 되도록 하는 데에 있어요. 어느 정도까지는, 내가 억만금을 줘도 팔 수 없는 것들이 나한테 하나씩 늘어나야 돼요. 이럴 때 자본가가 여러분한테 꼼짝 못해요."(읽기만 해도 통쾌하다. 자본가가 꼼짝 못한다니--- . 그러고 보니 '밥'을 핑계로 우리가 너무 굽신거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 옮길 수 없다. 기분나는 대로 옮겨 보았다. 요지는,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 사람이 사람(자신이든 남이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사소한 것도 놓치지 말자는 것, 노동 자체의 의미보다는 노동 다음에 할 수 있는 것(하고 싶은 것)을 잊지 말자는 것 들이 아닐까? 이런 것들로 해서 '서민에게 철학이 필요한 까닭'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래서 책이름이 <작은책>인가? 그런데 <작은책>은 결코 작은 책이 아니다. <작은책>을 읽게 된 게 여간 다행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기약할 수 없지만, 언제 일하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는 인문학 강좌를 직접 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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