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독자 후기

일본말 찌꺼기를 어찌해야 할까요

손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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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책을 좋아하는 목수 손현석이라고 합니다.

일터에서는 손목이라고 부릅니다.

오래 전에 작은책을 만났고 달마다 오는 책을 단숨에 읽으며 함께 웃고 울고 하고 있네요.

한번은 한자 투성이인 도로 표지판을 우리말로 바꿔보자는 제 글이 실리기도 했지요.

'집 짓기는 밥심보다 술의 힘'이라는(2021년 5월) 조광복님 글을 봤습니다.

저도 목수라서 그런지 조광복님이 집 짓기를 대하는 마음이나 용기, 공구를 맞이하는 기쁨 따위가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글 마지막을 "집 짓는 일에 장비 몫이 커졌다고 하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술심만 하겠는가?"라고 맺을 때는 절로 무릎을 딱 쳤습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저로서도 집짓기는 공구보다 술심이라는 말이 그렇게 반갑고 좋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왜 제목을 '집 짓기는 밥심보다 술의 힘'이라고 지었을까요? 지은이는 (밥 말고) 공구보다 술심이 더 크다고 말을 맺었는데 제목에는 갑자기 밥심이 나옵니다. 조광복님이 그렇게 제목을 지었는지 아니면 편집부에서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괜히 궁금하네요.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술의 힘' 입니다. '밥심'을 썼으면 '술심'이라고 받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왜 일본식 표현(~의)을 썼을까요? ~의 는 일본어 '노(の)'를 직역하면서 우리 말글살이에 뿌리 뻗은 아주 질긴 일본식 말투입니다. '내가 살던 고향'은 이라고 불러야 할 노래를 '나의 살던 고향'은 이라고 하면서 말 끝마다 ~의, ~의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이오덕. 우리말 바로 쓰기 123쪽). 혹시라도 밥심, 뒷심, 뱃심은 있지만 술심이라는 말이 우리말사전에 없어서 였다면 웃음만 나올 것 같네요. 

또 하나 조광복님 글에 '산승각(두껍고 기다란 나무 각재)'이 나옵니다. 공사판에서 흔하게 쓰는 목재인데 이것도 일본말입니다. 숫자 1(이치), 2(니), 3(산)에서 보듯이 우리말 세 치(3X3.3cm) 각재를 일본식으로 산승각(三寸角)이라고 한 것이죠. 그냥 세치 각재나 두꺼운 나무라고 하면 될 텐데 굳이 일본말 산승각이라 하고 그 뜻 풀이를 (  ) 안에 집어 넣을 까닭이 있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이런 일본말 찌꺼기가 공사 현장이나 법률, 언론, 예술 분야에 얼마나 많이 찌들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머리를 쥐어 뜯고 싶은 마음입니다.

'노가다 칸타빌레'라는 책을 쓴 송주홍님이 올 해부터  '노가다꾼으로 살아가기'라는 꼭지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목수 일을 늦게 배워 십 년 넘도록 집 짓기를 하고 있는 저로선 이렇게 살아 있고 땀내 나는 글이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모릅니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는 작은책 외침과 이보다 딱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송주홍님 글에는 '노가다'라는 일본식 말이 불쑥불쑥 대놓고 튀어 나옵니다. 국문과에서 한글맞춤법 강의까지 들은 기자 출신 송주홍님은 왜 고집스레 '노가다'라는 말을 쓰는지 궁금하면 책을 사 보라고 해서 어렵사리 책을 봤습니다(시골이라서요). 그 까닭은 노가다를 대신할 말을 찾지 못해서 라면서 누가 대신 찾아주면 좋겠다고까지 써 있더군요. 저도 공사 현장에서 쓰는 일본식 용어에 골치를 앓고 있는 터라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뜻 머리를 끄덕일 수는 없었습니다.

'딱, 이거야' 소리치며 노가다를 바꿔 쓸 말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글 쓰는 노가다꾼   글 쓰는 노동꾼(일꾼) 또는 글 쓰는 공사꾼

노가다꾼으로 살아가기 노동꾼, 일꾼, 공사꾼으로 살아가기

노가다 칸타빌레 → 일꾼 사랑 노래 (허병섭. 일판 사랑판)

꼭 노가다라고 써야만 입말에 딱 달라 붙고 땀이 더 배어 나오고 힘든 일을 제대로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걸까요? 막일이라고 하면 아무나 막하는 허드렛일이고 쓸데없는 일이고 하찮은 일일까요? 물론 쓰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들릴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사장에서 막하는 힘든 일을 말 그대로 막일이라고 하면 더 없어 보이고 노가다라고 하면 그럴듯해 보이는 건 아닙니다. 모두 힘들 게 막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괜히 일본식 말을 마구잡이로 쓰는 것 보다는 쓰임새와 뜻에 맞춰 노동꾼, 일꾼, 공사꾼, 막일 따위로 바꿔서 써도 괜찮다고 봅니다. 송주홍님 현장은 형틀 목공이나 토목이나 목수일 따위로 나눠서 부르면 됩니다. 물론 모든 노동을 간은 무게와 같은 울림으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우리에게 먼저 있어야 겠지요. 아무튼 우라까이라고 해야 더 잘 베끼는 것도 아니고 곰방이라고 해야 물건을 더 잘 나르는 것도 아니며 빠루 대신 못뽑이를 써도 못은 아주 잘 빠집니다.

저만 맞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귀찮다고 그냥 넘기다보면 우리말도 그냥 넘어가 버릴까봐 흰소리가 길었네요. 그래도 여긴 작은책이잖아요.

  • 월간 안녕하세요 손현석 독자님. 길게 정성 들여 쓰신 후기 잘 읽었습니다. 독자님 후기를 보고 송주홍 작가님께서 '노가다' 낱말에 대해 곧 글을 한번 쓰시겠다고 합니다. 응원의 말씀과 날카로운 지적에 저희 <작은책>에 대한 애정이 깊으시다는 게 느껴집니다. 독자님 후기는 너무 길어서 저희 책에 그대로 싣지는 못하고, 줄여서 싣도록 하겠습니다. 후기 써주신 분께는 2021-07-22 16:24 댓글삭제
  • 월간 그달치 책 2권을 더 드립니다. 별도로 문자 연락드리겠습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특히 일터 사고 안 나길 기도합니다. 2021-07-22 16:24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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